그 땅은 이 세상의 땅같이 보이질 않았어,

우리는 정복당한 괴물이 족쇄를 차고 있는 광경은 바라보는 데만 익숙해 있었거든.

그러다가 거기서 괴물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던 거야.

 

-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

나는 오징어를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부정하고 상처를 안겨준 세상 속에서 나는 고독한 유년시절을 맞이하였고, 그렇게 잊혀져 왔던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괴물들을 창조하게 된다.

 

이 부정의한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치유하고 수호하고자 나는 대왕오징어를 그린다. 그들은 비록 추하게 일그러져버린 동심의 산물이지만, 상처받기 이전의 가장 순수했던 동심의 기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을 이질적인 괴물로 간주하여 퇴치하려는 영웅. 그들은 나에게 상처를 준 부정의한 세상을 형상화한 존재로 미소년소녀의 얼굴, 하얀 날개, 환한 빛, 강인한 갑옷 등의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들로 과도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기묘한 모습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무시무시한 괴물을 보는 것 같다.

한결 좋은 바다를 달려가고자

나 이제 시재의 조각배 돛을 올리고

그다지도 참혹했던 바다를 등졌다.

 

두번째 왕국을 ‘나는 노래하리’

이곳에서 인간의 영이 씻기어

하늘로 오르기에 마땅해진다.

 

- <신곡>연옥편 1: 1~6, 단테 알리기에리 -

 

나의 작업은 부정의한 세상에 의해 괴물로 내몰려야만 한 존재, 그 세상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한 존재에 대한 서사시이다. 이 괴물들 사이의 적대적 공생 속에서 나는 이 괴물들을 만들어낸 부정의한 세상과의 갈등을 풀어나가 스스로를 구원해 나가고자 하는 작은 희망을 이야기한다.